소알/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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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안의 자식소알/일상 2022. 3. 29. 22:21
아이들하고 같은 방에서 자는 게 거의 3년만이다. 아침에 일어나 두 아이가 포근포근한 이불에 쌓여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두 아이 사이로 파고들어 양쪽으로 왔다갔다 하며 얼굴을 부비고 볼에 뽀뽀를 하고 꼬옥 안아주면서 잠을 깨운다. 아이들은 아직도 따뜻하고 보드랍고 말캉하다. 아이들도 잠결에 받는 엄마의 손길이 기분 좋은 듯 미소를 머금는다. 굴 속에서 잠든 아기곰을 바라보는 엄마곰의 마음도 이렇겠지, 둥지 속에서 잠든 아기새를 바라보는 어미새의 마음도 이렇겠지. 이 때만큼은 세상의 그 어떤 행복도 부럽지 않다. 큰 아이의 볼을 부비며 이 아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가 얼른 걷기를, 얼른 기저귀 떼기를 바랐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인데 그 때의 나는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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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소알/일상 2022. 2. 23. 07:06
원래는 22일에 구례로 떠날 예정이어서 16일부터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일단 침구와 옷들을 먼저 싸기 시작했는데, 겨울 옷들은 빨아 말리고 여름옷들은 창고 안에서 꺼내 정리해가며 쌌더니 옷 정리에만 거진 이틀을 소비했다. 그 와중에 수리 후 2주간 말끔하던 욕실에서 누수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여 설비 사장님께 연락하고 약속을 잡았는데, 이 분이 22일 이전엔 못 들여다본다고 하는 바람에 내려가는 일정을 늦추었다. 그 뿐 아니라 목요일까지는 밤온도가 너무 차길래 외풍이 심한 그 집에서 덜덜 떨며 자는 꼴을 이틀이라도 면하고 싶었고, 펜션 사장님께 공사가 덜 끝났으니 조금 늦게 와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는 등등 날짜를 미룰 이유는 많았다. 펜션 사장님이 전자렌지는 들고 오시라 하기에 부랴부랴 당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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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소알/일상 2022. 2. 8. 23:14
3년 전쯤 옆집 친구가 내게 이런 저런 바자회에 가자고 말을 여러 번 꺼냈는데 다 거절했었다. 당시 이미 집 안에 물건이 넘쳐나는데다 집도 낡아 아무리 예쁜 오브제를 갖다 놓는다 해도 그냥 쓰레기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일 뿐이므로. 하지만 나라고 왜 깨끗하고 예쁜 집을 갖고 싶지 않겠는가. 코로나가 극성이던 2020년 여름, 난 뜯기고 바래고 낙서된 거실 벽지에 진저리를 치며 이대론 도저히 못 살겠다, 페인트칠을 해보자고 맘 먹었다. 시험삼아 발코니를 한 번 칠해보고, 할 만 하다 싶어 거실의 벽과 몰딩을 흰 색으로 눌러버렸다. 벽 하나를 정해서 가구를 띄운 뒤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세 번에 걸쳐 칠을 하다보니 페인트칠에 한 달이 걸렸다. 그나마 벽지가 깨끗해지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고 너무 힘들기도 했으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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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식사소알/일상 2022. 2. 7. 23:53
큰 아들이 생일을 부산에서 지냈는데, 서울에서도 생일파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친정식구들과 간단히 케익에 촛불 켜고 노래나 불러주려고 했다. 그러나 저녁으로 먹으려했던 양갈비가, 뜯어보니 양이 너무 많았고 언니가 갑자기 사촌오빠와 코스트코에 가더니 회와 빵을 사왔고 아들 케익을 사러 갔던 남편은 와인을 사왔고... 갑자기 오늘 안에 먹어야 할 음식이 많아져서 또 저녁상을 차렸다. 이러다 홈파티의 달인이 되겠어...ㅠㅠ 차려놓고보니 다 코스트코 음식들.. 우린 코스트코 멤버쉽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애 생일인데 정작 큰애가 좋아하는 음식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의외로 애들이 양갈비도 제법 뜯고 하지만 사진에는 없지만 초컬릿케익도 맛있었고 생일이라며 축하금도 받았으니 나름 만족스러웠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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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소알/일상 2022. 2. 7. 23:49
최근의 나는, 그간 나를 짓누르고 있던 질서에서 벗어나 붕 떠오르는 자유로움을 느끼다가도 수영장에서 발에 땅이 닿지 않음을 알아챈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높다란 장대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걷다가 떨어지는 꿈도 꾸고 아프기 전의 얼굴을 한 아빠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 꿈에서 퍼뜩 깨면 새벽 두 세 시고 이후엔 돈 걱정, 건강 걱정, 세금 걱정, 애들 교육 걱정, 애들 키 걱정 등 온갖 걱정들이 고목의 뿌리처럼 끝없이 곁가지를 뻗어 나간다. 난 피곤하지 않고 배고프지 않아야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므로 최대한 이어서 자려고 노력은 한다. 수면의 기본 자세는 사바 아사나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공들여 전신을 이완시킨다. 그 자세로 책의 내용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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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소알/일상 2022. 2. 5. 16:44
새해 아침, 눈이 소복이 내렸다.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놀러 나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전날 내어놓은 육수로 떡국을 끓여 한 그릇씩 먹고 옆 동에 있는 친정으로 건너가 세배했다.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은 신나게 눈 놀이를 하러 나갔고 어른들끼리는 티타임을 가졌다. 집으로 돌아와 대충 점심을 먹은 뒤 아이들은 다시 놀러 나갔는데 옆 집 친구 내외가 아이를 데리고 나왔길래 나도 같이 나갔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옆집에서 다시 차를 한 잔 마셨고 이후에는 윗집 꼬마가 내려와 우리집에서 오후 내내 놀다 저녁 8시에 돌아갔다. 그리곤 아들들은 뭔가 상큼한 게 먹고 싶다길래 남편이 우유와 냉동블루베리를 갈아줬다. 당시 난 이 풍경이 너무 가족적이고 화목해보여 찍은건데 이후 벌어질 참사의 증거기록이 돼버렸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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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소알/일상 2022. 1. 15. 12:52
내가 이 집에서 산 지 어언 12년째다. 당시엔 집 자체도 새 거였고 자금도 별로 없어서 거의 고치지 않고 들어왔다. 4년만에 2인가구에서 3인가구를 거쳐 4인가구를 돌파했고 어느덧 큰 아이는 신생아에서 영유아, 초등 저학년을 지나 곧 초등 고학년에 진입한다. 난 구조주의자로서 최적의 동선과 최적의 시스템을 가지면 육아가 덜 고달플 것이라고 믿어왔고 그에 따라 3~4년에 한 번씩 가구 배치를 바꿔왔다. 처음 두 세 번은 아이들을 재우고 거의 나 혼자 바꿨는데 (남편은 불필요하다며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2년 반 전 배치땐 장롱을 옮겨야 했기에 돈을 들여 사람을 썼다. 이번엔 두 아이의 방을 분리시키고 세탁기의 위치를 옮기고 낡다못해 삭아가는 욕실수납장과 액세서리를 교체하고 아일랜드식탁을 맞췄다. 그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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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식도락소알/일상 2022. 1. 15. 12:20
전날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에 가서, 다음 날 아침 홑몸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2주간의 휴가나 다름없기 때문에 언제나 설레는 마음이다. 혼자 상경하기엔 기차보다 비행기가 값도 싸고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으니까 항공권을 끊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라 지형이 그대로 보였다. 저 울뚝불뚝한 산의 모습은 기괴스러울 정도다. 집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김포몰 토끼정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음... 하지만 점점 맛이 없어지는 느낌이야... 저녁엔 오랜만에 술자리 약속이 있었다. 달리기를 같이 하는 친구도 나처럼 딸을 꼬드겨 시댁에 며칠 보내보았다고 ㅋㅋ 아주 오랜만에 밤에 놀아보았다. 친구가 애정하는 이자카야를 예약했다. 밀푀유나베, 오징어다리 가라아케, 시샤모구이를 먹고 히레사케와 유자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