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발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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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12악방 내한공연검은발개/감상 2009. 10. 7. 07:08
우연한 기회-내가 공연을 보는 계기는 항상 동생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로 인해 '중국 소녀시대'라 불린다는 여자 12악방의 내한공연을 보게 되었다. ↑ 얘네들 중국 전통 악기를 사용해 현대음악들을 연주하는 기예(?)를 지닌 애들이다. 처음엔 12악방이라길래 열두개의 악기를 열두명이 연주하는 줄 알았더니 대략 7개의 악기들만 사용하는 듯 했다. 거문고 같은 악기 '구졍', 두 종류의 피리 '쥬디' , '피파'와 얼후'라는 현악기, 실로폰 비슷한 '양친', 한 줄로만 이루어진 현악기 '두시엔친'. 공연을 보고 있자니 음악이라기 보단 서커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한 줄 악기 두시엔친은 정말 독특했다. 하나의 현을 퉁긴뒤 그 옆에 붙어 있는 나무 막대를 움직여 소리의 울림을 만들어내는데,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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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검은발개/감상 2009. 2. 23. 03:01
어느 날, 옛 친구와 함께 술집에 들른 영화감독 아리는 계속 반복되는 친구의 악몽에 관해 듣게 된다. 매일 밤 꿈에 어김없이 등장해 자신을 쫓는 정체 모를 26마리의 사나운 개들에 관한 이야기. 두 남자는 이 악몽이 80년대 초 레바논 전쟁 당시 그들이 수행했던 이스라엘 군에서의 임무와 어떠한 연관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 오랜 시간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리는 자신이 당시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서 전세계를 돌며 자신의 옛 친구들과 동료들을 찾아 나선다. 아리가 과거의 비밀을 더 깊이 파헤쳐갈수록 때로는 선명하게, 때로는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형태로 그의 기억들도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감당 할 수 없는 현실은 허구와 마찬가지다. 한낱 병사에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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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파이브>검은발개/감상 2008. 12. 8. 01:03
천재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따금씩, 부정이 불가능할 만큼의 명확한 형태로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오랜만의 천재의 등장-아니 재등장이라고 해야하나-를 접하니 새삼 저 말이 되새겨진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새로운 만화 는 이를테면, 천재의 기록갱신이다. 전작 와 , 등에서도 그랬듯이 마츠모토 타이요의 신작은 일관된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청춘을 향한 찬미, 유희에 가까운 그림체와 세계관, 한컷 한컷에 담겨진 기괴하리만큼 거대한 역동성 등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이야기들을 놀라운 화풍으로 재생산한다. 작가가 지향하는 주제의식, 즉 반항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 그리고 그를 통한 성장과 구원은 각 캐릭터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함께 놀라우리만치 효과적인 방법으로 표현된다. 도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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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듸오 데이즈검은발개/감상 2008. 2. 12. 13:35
일제시대, 조선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만든다. '최초'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고들을 안고 있기 마련이고, 그 우여곡절을 헤쳐나가는 길은 독립운동과 사랑, 언론의 자유, 창작의 고통 등의 그럴 듯한 주제와 어설프게 맞물린다. 사실 에 등장하는 라디오 드라마는 엉망진창이다. 급조된 쪽대본에, 배우들의 대책 없는 애드립, 숱한 방송사고와 그를 얼렁뚱땅 무마하려는 반복된 시도의 악순환이 가득한 형편 없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일제 시대의 사람들, 극도로 상투적인 이야기가 절대 상투적이지 않을 그 순수한 사람들에게는 한 편 한 편이 놀라움과 흥미로 가득한 방송물임에 틀림 없다. 그들에게는 '드라마'라는 것을 접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그냥 "영희와 철수가 행복하게 살았는데, 순희가 나타나서 철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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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P.S. I LOVE YOU검은발개/감상 2008. 1. 6. 16:06
- 잘 키운 남편 하나, 열 보험 안부럽다 - 올해 여름엔가 가을엔가. 푸르덴셜이라는 보험회사의 한 광고는 정말이지 섬뜩한 것이었다. '10억을 받았습니다.'라는, 장님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솔깃한 카피 한 줄과 함께 잔잔하고 어여쁜 나레이션이 어쩌구 저쩌구 흘러나오는 내용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10억이란 것이 로또 당첨금도 아니고 강남 아파트 판 돈도 아닌 바로 남편의 생명보험금이었다! -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다! 처럼 - 무시무시한 반전이 담겨있는 광고였다. 또 있다. 어느 회사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죽어서도 자식 대학 입학 시키고, 시집 장가 잘 보내고 A/S 훌륭하게 잘하는 아버지는 바로 우리 보험을 든 사람인 것입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의 오컬트적인 광고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TV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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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검은발개/감상 2008. 1. 2. 00:37
봄빛 짙어 이슬 많고, 땅 풀려 풀 돋다. 산 깊고 해 긴데, 사람 자취 고요하니 향기만 쏜다. - 추사 김정희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일명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제목과 주제로, 작가는 자신의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한 문장들과 소소한 옛 이야기들을 아주 부드럽고 따스한 문체로 풀어놓았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비롯해 어머니, 딸아이, 친구와 같은 지인들에 얽힌 일화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꼈던 소소하고도 인상적인 감정들은 작가만이 가진 예민한 감수성들에 채색되어 아름다운 풍경화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유려한 한 폭의 그림 한 귀퉁이에 쓰여진, 보석같은 문장과 문장들. 매실은 신맛을 남겨 이빨이 약해지고 파초는 푸르름을 나누어 비단 창문을 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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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궁녀검은발개/감상 2007. 10. 19. 00:51
정확한 때를 알 수 없는 조선 시대의 궁궐 안. 그 곳에서 생활하는 '궁녀'들의 모습을 가능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게 이 영화의 목적이었을까. 혹은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을 궁녀들의 몸을 빌어 표현하려 했던 것이 목적일까. 해석이야 두 방법 모두 가능하겠지만, 기획 의도라면 아마도 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전자라면, 난 이 영화에 호의를 표하고 싶다. 꼼꼼한 고증을 통해 독특하고 참신한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시대 궁녀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점과, 그것을 추리극 및 호러의 형태를 빌어 비교적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냈다는 점은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하지만 후자였다면, 그 주제가 잘 나타났다고 보기 어려울 듯 하다. 모든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