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알/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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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알/일상 2021. 11. 22. 13:28
오늘부터 아이들이 전면등교를 했다. 올해는 계속 주 3일씩 두 아이가 동시에 학교에 갔는데도 전면등교라고 하니 기분이 완전히 새롭다. 학교가 아이들의 일과를 제대로 책임져주는 게 2020년 2월 이후로 처음 아닌가. 생각해보니 작년 10월부터 난 친정일에 정신없었다. 아빠 소유의 집을 수리해서 팔아야했고, 그 다음엔 친정이 이사올 집을 수리하고 이사를 시킨 뒤엔 계속해서 아빠에게 신경을 써왔다. 전면등교가 계속 유지될지 의심스럽지만, 그리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지만,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한 건 진짜 오랜만이다. 아주 훨훨 날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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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이소알/일상 2021. 11. 17. 23:13
결혼 전 자취집에서 남편은 금동이란 이름의 애플스네일을 키웠는데, 난 그 달팽이를 보는 게 좋았다. 목적지를 향해 더듬이를 쫙 편 채 전속력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물결을 따라 일렁이는 몸짓과 표정을 알 수 없는 새하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외계의 생명체를 보는 것 같은 경이로움과 몇 억년 전부터 함께 살아온 듯한 친근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런 이유로 새로 조성한 수조를 바라보면서 애플 스네일을 한 마리 넣겠다고 생각했다. 주말에 아이들과 청계천을 걷다가 동묘역 근처 수족관 거리에서 달팽이를 하나 사서 수조에 넣었다. 작지만 활발해 보이는 녀석으로 골라왔는데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달팽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달팽이의 먹이는 따로 주지 않는다. 금붕어 먹이 찌꺼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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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래소알/일상 2021. 11. 16. 23:14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나래를 보았다. 꿈속에서 나는 방이 여럿인 한옥에서 열리고 있는 과 개강파티에 참석해서, 아버지 장례에 와준 동문들에게 인사를 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아무도 없는 방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장지문 너머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들었더니 나래가 문을 열고 스윽 들어왔다. 씨익 웃으며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데, 친구의 얼굴에 있는 주근깨가 보일 정도였다. 난 꿈에서 그녀의 죽음을 완벽히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반쯤 웃고 반쯤 울며 외쳤다. "야아 무섭게 왜 왔어? 왠일이야?" 그리고 그 미소가 생생한 채 잠을 깼다. 대학교에 합격하고 첫 오티날의 나래가 기억난다. 스튜디오의 맞은 편에 앉아있었는데, 아이보리색 코트의 깃엔 토끼꼬리같이 동글동글한 장식이 달려 있어서 정말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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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키우기소알/일상 2021. 11. 7. 17:09
지난 주에 애들 초등학교 연못에서 금붕어가 잔뜩 부화했다며, 입양할 가정은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병원 다니느라 바빠 죽겠는데 무슨 물고기냐며 둘째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했더니 울고 불고 절규하고.... 창고에 20년 묵은 수조가 있어서 일단 알았다고 했는데, 장례 끝나자마자 여과기 검색하고 사고 물 받아놓고.. 목요일에 학교에서 받아왔다. 막상 데리고 오니 너무 작고 귀엽다능....... 손가락 두 마디만 하다능.... 위쪽으로 보이는 조금 큰 애가 금이, 아래 있는 애가 동이. 같은 패트병에 담겨오는 동안 둘이 의형제를 맺었는지 (실제 형제일지도) 동이가 금이만 졸졸 쫓아 다닌다. 목요일 내내 물적응을 시킨 뒤, 금요일 오전에 드디어 세팅해놓은 수조에 입수! 너무 귀엽기도 하고, 수조에서 졸졸 물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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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소알/일상 2021. 10. 14. 23:49
며칠 전 10월 14일부터 어린이들 무려 독감 접종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고, 애들의 목요일 스케줄이 가장 여유로우니 그 때 접종을 시키리라 생각했다가 그만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오늘 약수역 근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수다를 떨다가 문득 아 오늘이구나 깨달았다. 친구 집에서 나와보니 큰 아들 방과후가 끝났을 시간이라 전화를 해봤다. 전화 잘 안 받는 애가 오늘따라 바로 전화를 받더니 마침 버스가 전 정류장을 지났다길래 이번에 내리라고 했다. 아이를 만나 병원에 가니 역대급으로 사람이 없어서 5분만에 접종을 시켰다. 집에 가겠다는 큰 애를 데리고 정류장에 갔더니 바로 버스가 왔다. 큰 애만 버스 태워 보내고 난 옆 건물에서 피아노를 하고 있는 둘째를 기다렸다. 기껏 엄마가 와있어서 좋아했더니 주사 맞으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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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대추소알/일상 2021. 10. 10. 20:51
외며느리인 엄마를 도와 제사상과 차례상을 차리는 것은 정말 싫었다. 자연스레 밤과 대추는 고리타분함, 악습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과일들이라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매년 봄에 살구를 주는 언니가 가을엔 밤을 주시는데, 밤 까는 일의 고단함을 언급하며 주면서도 미안해하신다. 받은 밤은 며칠에 걸쳐 다 까서 얼려놓은 뒤 밥을 할 때 조금씩 얹어서 먹는다. 그러면 어찌어찌 다 먹기는 한다. 옆 동으로 이사 온 엄마에겐 대추가 잔뜩 들어왔다. 애들 주라고 하시기에 받아오긴 했는데 우리 애들도 안 좋아해... 결국 먹는 속도보다 시드는 속도가 빨라서 어쩌나 고민하다 결국 대추청을 만들기로 했다. 결국 그제와 어제, 낮에는 대추 까고 밤에는 밤 까고.... -_- 하는 김에 꿀도 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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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트소알/일상 2021. 10. 1. 13:15
머리를 잘랐다. 머리가 길면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 같아 20대부터 주로 짧은 머리를 해왔다. 작년 1월에 마지막으로 짧게 커트를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애들이 주구장창 집에 있다보니 미용실에 갈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탈모 의사께서 머리가 긴 것과 탈모는 상관이 없다시피 하다고 보증해주셔서 오랜만에 길러보기로 마음 먹었다. 머리가 길면 좀 더 아가씨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긴한데 유지 관리가 역시 귀찮다. 묶어 올리는 것도 귀찮고, 집안 곳곳에서 머리카락이 보이고, 화장실 배수구도 자주 치워야 하고... 길이가 등 한복판을 넘어서자 결국 자르기로 마음먹고, 바로 잘라버렸다. 이렇게 긴 것도 오랜만이고 염색이나 펌도 안 했기 때문에 기증을 해볼까 미용사에게 물어봤더니, 기증하려면 30센티가 넘어야 하는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