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영상의 놀라운 이중주>
- 영화 [원스]
뮤지컬 영화 '원스'는 결코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시시껄렁한 사랑이야기일 뿐이죠. 파도에 넘실거리듯 흔들리는 조악한 영상과 대충 이어 붙인 듯한 컷들, 미장센이라곤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화면과 화면들이 음악에 실려 둥둥 떠다닙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괜찮은 배경음악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잘 만든 홈비디오라고나 할까요. 말그대로 '싼티나는 영화'이며. 영상 부분에 있어서 큰 가치는 그다지 따질만한 건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말이죠. 왜 그럴까요. 단순히 좋은 음악들 덕분에? 아니면 뭔가 다른 숨은 이유가 있어서? 저도 그게 궁금해 죽겠습니다.
영상에 비해 음악들은 정말 훌륭합니다. 뭐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애잔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이 밀도 있게 화면을 꽉 채웁니다. 노래를 부르는 인물의 평온한 표정 위로 상처 받은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저는 이토록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를 본 적이 없어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고 가사와 영화 내부적 상황, 즉 인물의 속마음이 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대충 만든 영화라면 내레이션으로 배치 될 수 있는 인물의 생각들을 음악들이 대신 표현하고 있는겁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예요. '그'는 떠난 여인의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서 작사를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녀를 향해 내뱉는 비난의 내용이죠. '그'는 옛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끊임 없이 거짓말쟁이라고 절절하게 되뇌입니다. 한이 서려있어요. 하지만 노래 말미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때, 동영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녀'와 만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절묘한 방식의 화면 전환이자, 세련되기 그지 없는 화법입니다. 전 그 장면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그'가 건네준 음악을 시디플레이어로 들으며 작사를 하던 '그녀'는 플레이어의 배터리가 떨어지자 한 밤 중에 가게로 나가 새걸로 갈아끼운 후, 자신이 만든 가사를 붙여 반주와 함께 부르며 집으로 걸어옵니다. 이 장면은 한 컷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무런 기교도 없이 그저 '그녀'의 모습을 앞서서 걸어가며 찍은 것 뿐인데요. 마치 한 편의 잘만든 뮤직비디오 마냥 굉장히 멋집니다. 단지 흥얼거리듯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걷는 그녀의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워요.그 노래의 가사는 '그녀'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진심을 담아 가사를 만들고, 또한 진심을 담아 노래를 부른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근래에 본 영화 속 장면 중 가장 아름다운 씬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어요.
우연인지 다행인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거칠게 말해 '싼티'나는 영상들과 효과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아마도 '그러한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고 구성한 것은 훌륭한 음악 영화를 만들기 위한 감독의 계산된 의도이다.' 라고 말 할 수도 있을 듯 한데요.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15만 유로라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적은 규모의 제작비도 그렇고, 군데 군데 색보정도 마치지 않은 듯한 영상도 그렇고, 굳이 의도 한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감독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요령을 피우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들을 최대한 진심으로 정성그레 화면에 담아 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저것 복잡하게 재고 따지지 않은 채 말예요.
불현듯 '라따뚜이'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깐깐한 요리평론가가 한참을 기다린 후에 받아든 요리는 시골 농부의 식탁에나 등장할 법한 소박한 메뉴 '라따뚜이'입니다. 하지만 그 평론가는 요리를 한 입 베어물고는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준 요리를 맛보는 듯 한 '자체 플래시백' 상태에 빠지죠. 원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감독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오는, 싱싱한 날것 그대로의 영화. 모든 세상의 공통된 언어라는 음악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사용한, 훌륭하기 그지 없는 음악 영화입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이후 최고의 감동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