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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텔미 온어 선데이
    검은발개/감상 2007. 10. 1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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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요커여, 신데렐라를 꿈꾸는가>

    - 뮤지컬 '텔미 온어 선데이'

    뭐랄까요. 이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사랑에 목을 메던 한 여성이 세 번의 실연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고 또 그로 인해 결국은 노처녀가 되는 과정'을 명쾌하고도 편협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남자들이 원하는 건 독립적인 여자가 아닌, 오로지 예쁘고 어리고 조건이 좋은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한 여자의 오디세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한편 많은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 않던 자유롭고 세련된 이미지의 뉴욕이나, 지금 이곳 한국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이야기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그다지 칭찬할 만한 점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편협하거든요. 주말에 시간을 내서 뮤지컬을 보러 온 여성 관객분들은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쌓일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뮤지컬의 주인공인 데니스는 엄청나게 수동적인 여성입니다. 런던에서 남자에게 차이고 뉴욕으로 떠나, 그 곳에서 접근해오는 세 명의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지만 또 세 번 다 실연 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데니스가 한 일이라곤 그저 상대방 남자의 호의에 응답하거나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일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 해내는 일은 전혀 없어요. 심지어는 뉴욕에서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사는 건지조차 모호합니다. (이 점은 극 전개에 있어 불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암시는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세 번의 실연과 엄마가 보내온 비디오를 통해 변화를 다짐하지만 그 변화 뒤에도 그녀의 외침은 그저 '또다른 사랑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내니 다이어리'류의 칙릿 문학과 '섹스 앤 더 시티'등에서 등장하는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가 존중받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어째서 이 정도로 수동적인 여성의 이야기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는지 참 의아할 정도입니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현대 뉴욕 여성이라니, 맙소사에요.

    모든 노래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라는 유명한 작곡가가 썼습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부터 '캐츠', '오페라의 유령'까지 엄청나게 유명한 뮤지컬들의 작곡을 맡은 사람이죠. 네임밸류에 걸맞게 노래들은 비교적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당히 경쾌하고, 적당히 애잔해요. 하지만 애써 대중적인 요소를 가져다 쓰려는 시도탓인지 약간 식상한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뮤지컬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대충 만든 팝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 뭔가 조금 아쉬운 기분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곡가가 큰 작품 사이사이에서 머리 식히기용으로 살짝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이 뮤지컬은 모노드라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데니스의 시점으로만 진행되죠. 모노드라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역량인 것이 당연합니다. 총 세명의 배우가 번갈아가며 한 번씩 공연을 하는데요. 제가 관람했을 때의 주인공은 김선영이라는 배우였습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좋은 가창력에, 풍부하고 자연스런 표정과 제스추어. 그다지 흠잡을 만한 점은 없었어요. 하지만 모노드라마를 맡기엔 그 카리스마가 조금 역부족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큰 흡입력이 없었습니다.

    몇년 전에 배우 서주희의 모노드라마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가운데 혼자 떡하니 앉아, 오로지 독백만으로 극을 전개해나갔습니다.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쉬운 형식이었지만 훌륭하게 소화하더군요. 그 흡입력, 그 카리스마란... 아무래도 모노드라마를 소화해내려면 역기력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더 필요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기했던 점은, 스스로 움직이는 무대 소품들이었어요. 거대한 무대장치 밑에 조그마한 바퀴를 달고 몇 명의 스텝들이 낑낑거리며 끌어대는 소극장의 풍경들을 많이 보아온 저로썬, 마치 유령처럼 혼자 스윽 나타났다가 스윽 사라지는 소파와 침대들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두산아트센터, 뮤지컬보다 이 공연장 자체가 더욱 감동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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