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라듸오 데이즈
    검은발개/감상 2008. 2. 12. 13:35

    일제시대, 조선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만든다. '최초'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고들을 안고 있기 마련이고, 그 우여곡절을 헤쳐나가는 길은 독립운동과 사랑, 언론의 자유, 창작의 고통 등의 그럴 듯한 주제와 어설프게 맞물린다.

    사실 <라듸오 데이즈>에 등장하는 라디오 드라마는 엉망진창이다. 급조된 쪽대본에, 배우들의 대책 없는 애드립, 숱한 방송사고와 그를 얼렁뚱땅 무마하려는 반복된 시도의 악순환이 가득한 형편 없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일제 시대의 사람들, 극도로 상투적인 이야기가 절대 상투적이지 않을 그 순수한 사람들에게는 한 편 한 편이 놀라움과 흥미로 가득한 방송물임에 틀림 없다. 그들에게는 '드라마'라는 것을 접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그냥 "영희와 철수가 행복하게 살았는데, 순희가 나타나서 철수가 좀 고민한다. 근데 알고보니 철수랑 영희랑 남매였고, 그 와중에 철수는 기억상실증에도 걸리고 차에도 치이고..." 뭐 이딴 이야기도 열광하며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극중극의 완성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리하게도 감독은 이야기하기 편한 시대를 선택했으며, 고증이 좀 어설프기는 했어도 시대적 분위기는 잘 살린 듯 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점은 두말 할 것 없이 영화 그 자체의 이야기와 연출력에 있다. 시나리오는 극중극 쪽대본처럼 그 전날 밤 급조했는지 인과관계가 허술하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어나가려 하다 보니 몇개의 드라마가 중심축 없이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재즈 가수를 연기한 김사랑의 연기는 어색하기 그지없었으며, 캐릭터는 죄다 평면적이고 희미한 인물인데다가 무게 배분에도 실패해 주인공이 류승범인지 이종혁인지 헷갈린다. 그나마 괜찮았던 부분인 '방송사고 투성이인 얼렁뚱땅 라디오 드라마'는 의도한건지 아닌지 불분명함에도 그 전형성에 의해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떠올리게끔 한다. (실제로 영화를 평하는 여러 댓글들에서 "이거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갖다쓴거잖아."라는 말이 보이기도 했다.)

    아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요즘의 관객들은 절대 일제시대의 그 순박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형적이고 어설픈 이야기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온갖 이야기에 닳을데로 닳아 눈에 불을 켜고 새로운 것을 찾을 줄 아는 약아빠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류의 대충 만든 듯한 - 물론 실제로는 아니겠지만...- 이야기는 전혀 와닿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글써놓고 보니 괜히 제작진한테 미안해진다. 뭐 어차피 안볼테니까 상관없지만.


    * 그나저나, 마지막 부분의 임성한 작가 드라마 "하늘이시여"에 대한 패러디(혹은 오마주)는 작가에 대한 오마주일까, 조롱일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기려고 해놓은걸까? 진짜 의도가 궁금하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