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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꿈을 존중합니다만.
    소알/일상 2007. 10. 21. 00:35


    우리 바로 윗집에는 나이 지긋하신 부부만 사시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작년, 대낮에 집에서 공부 하겠다고 끙끙대면 어김없이 울려대는 그 소리에
    그것도 여러 곡을 다채롭게 연주하면 나으련만 한 곡만 주구장창 연습하는 그 끈질김에,
    그러나 대낮에 집에 있다는 자랑할 수 없는 사실로 인해 불평 뻥긋 할 수 없는 그 답답함에,

    단지 이웃간 소음으로 인한 살해 뉴스를 보며
    살짜쿵 '그럴 수도 있겠군'이란 공감만 하고 지냈더랬다.

    어쨌든 나도 한땐 rock과 metal 경청하기를 즐겼던,
    세상에 대한 울분을 간직한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윗층 기타 청년의 꿈과 미래를 존중해왔던 것이다.

    오후 내내 여자 보컬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겨울날을 지나
    드럼과 베이스까지 모두 합주를 하는 봄날을 지나
    어쨌든 난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진척상황을 본의 아니게 파악해갔으며
    나름 응원도 하고있었다. (부디 연습실을 얻을 정도가 되기를)


    하지만 며칠 전, 새벽 3시에
    발과 드럼스틱으로 리듬을 맞춰가며 연주를 하던 중
    기타 떨어뜨리는 소리가 내 방 천장을 타고 지이잉하고 울린 순간.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앗!!!"
    ..그렇잖아?

    결국 그 다음날 저녁, 그 친구가 또 열렬히 기타를 치고 있길래
    올라가 초인종을 다섯번 누른 후에야. 검은 콩같이 생긴 기타청년이 빵긋 대문을 열었다.

    "난 분명히 당신의 꿈을 존중하고 있고,
     낮에 연습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새벽 3시에 밴드 전체가 연주을 하는 건 좀 심하지 않느냐." 란 요지로 입을 떼었으나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시끄러우셨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로 내 말을 막아대는 그의 사과에
    "새벽 3시는 좀.. 밤엔 안해주셨으면 좋겠어요."란 말만 간신히 하고 뒤돌아섰다.

    뭔가.. 1년간 수없이 맘을 추스려가며 가끔은 경청도 하고 응원도 하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여기까지 왔는데
    불평할 자유마저 뺏긴 기분이랄까. 낚인 기분이랄까.


    그 친구는 내가 부탁한 바와 상관없이 요새도 가끔 새벽에 기타를 쳐대곤 하지만
    어둠에 물든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서 약속을 하곤 한다.
    "내 자네가 이담에 훌륭한 뮤지션이 되겠다고 맹세한다면 참아주기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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