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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할 발제준비를 하느라 오랜만에 종일 방책상에 앉아 있었다.
8시가 되니 샷시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설설 들어오는구나.
지구온난화를 체감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특히 늦가을에도 한낮의 햇살은 뜨거웠다.
그러나 난 자타가 공인할만큼 뜨뜻이 입고 다녔고
불경기랍시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도 어처구니없을만큼 일찍 등장하는 바람에
겨울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봐도 무시했던 것이다.
키보드 치는 손에 찬 기운이 감돈다.
이상하게도 매년 11월 말이면 책상을 종일 지키고 앉아있어야 할 일이 생긴다.
하지만 이맘때의 저녁하늘은 매우 청아하고도 아름다워서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꽤 즐겁다.
새파란 하늘 높은 곳엔 새털구름이 간간이 멈춰 있고
노을이 질 무렵 펼쳐지는 선명한 색조의 그라데이션은 무지개처럼 빛이 난다.
1시 방향에 있는 아파트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데도 커튼을 치기 아깝다.
이윽고 밤이 완전히 내려앉으면, 마치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자그마한 아파트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사실 밤풍경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거의 똑같은데도, 아까부터 봐온 이야기와 이어지기 때문에
좀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황량한 도시의 전망이지만, 난 이 풍경을 사랑한다.
역시 책상은 큰 창문 앞에 두는 게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