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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실 핸드폰 주인 찾아주기
    소알/일상 2008. 11. 6. 02:47


    한가하게 놀다가 잃어버린 것임에 틀림없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이거 골때리는 문제 중 하나다.
    먼 옛날 오락실에서 고삐리가 내 핸폰을 가져간 이후로
    (바보녀석이 내 핸폰으로 제 집에다 전화를 건 바람에, 혼쭐을 내준 뒤 받아내긴 했지만)
    나의 기본방침은 '주워서 돌려준다'였다.
    이 한 몸 귀찮아도, 나쁜놈들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자발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면야 받겠지만 보상금을 요구할 생각도 없으니
    이거야말로 무료봉사이다.

    그러나 이 방침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맨 마지막으로 돌려주었던 여자애의 반응이었다.
    뭐 마지못해서 고맙다고 하기는 하는데, 불신에 가득 찬 얼굴이었달까.
    그냥 놔두면 내가 도로 찾아갔을텐데 그걸 왜 굳이 주워서 갖고 있느냐, 너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대충 이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돌아선 계기는 몇 주 전, 오빠의 생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싶어 주머니에 넣긴 넣었는데
    비는 부슬부슬 오고, 펴고 보니 망가진 우산이었어서 펄럭거리고, 앉을 자리는 마땅찮고.
    조금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전화주인이 아니라 전화주인과 만나기로 한 여자애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길래 국민은행 근처니까 가지러 오시라 그랬더니
    국민은행 근처에 편의점이 있는데 그 편의점에 맡긴 뒤 자기에게 편의점 상호를 문자로 보내라는 거였다.

    ....뭐냐 이 심히 잘못된 상황파악은???
    이봐이봐. 난 네 친구의 핸드폰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영화를 봐도, 인질을 갖고 있는 놈이 전화로 "그곳에 두시오"라고 하지
    애엄마가 "우리 애를 XX동 OO삼거리 두 번째 쓰레기통에다 두세요."라고 하진 않는다구.

    더구나 이 아이는 자신이 일을 아주 영특하게 잘 처리하고 있다고
    (불필요하게 낯선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어쩌면 굳이 자기가 감사할 필요없는 일에 감사하지 않고도, 핸드폰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순간적으로 잘 고안했다고) 확신하며 말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고맙다는 이야긴 한 마디도 안 했는데,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것이 그 아이가 가장 잘한 짓이었다.

    이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스스로도 의심스러울 단계에 이르렀지만
    어쨌든 '좋은 일은 끝까지 잘해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비를 반은 맞아가며 은행까지 내려갔는데, 시야에 편의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헉. 설마 우리더러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서 맡기란 거였냐!

    물론 동네가 동네니까 편의점이야 근처에 있겠지만
    우린 배가 고팠고 추웠고 우산을 사야했고 비를 맞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내가 착하지 않았다.

    그나마 '국민은행에 둘테니 알아서 찾아가삼'이라고 말은 해줄까 싶어
    통화버튼을 눌러봤더니, 슬프게도 핸드폰이 매우 잘 잠겨있었다.
    고로 우리는 "친구 잘못 둔 죄다"라며 그 핸드폰을 국민은행 외벽에 버려두고 왔다는 이야기이다. 끝.

    어쩌면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지만
    (평소에 좋은 일을 해야 말이지.. 쩝)
    그래도 잃어버린 핸드폰을 누군가가 주워서 되돌려 준다고 하면,
    적어도 상대의 편의를 배려하고, 당사자가 찾으러 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빈손으로 와도 상관은 없지만 기왕이면 캔음료수나 가나초컬릿이라도 들고 말이다. 
    (이 경우는 당사자가 아닌 친구였지만, 어쨌든. 둘은 별로 안 친했던걸까.)
    요새 젊은 처자들은 오로지 대우를 받는 것, 손해를 보지 않는 것만 생각하고, 그런 매너를 너무 모른다.

    고로 앞으로 젊은 처자의 핸드폰은 절대 줍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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