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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27 가평 여행소알/여행 2021. 7. 7. 13:42
근 2년 동안, 시댁을 제외하곤 한 번도 집 밖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남편은 업무 스트레스에 쩔어 있고, 난 암 투병 중인 아빠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워낙 집에서도 잘 노는 아들들은 아무 불평도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지냈지만, 지레 찔리고 있었던 나는 남편의 여동생이 가평에서 전시를 한다기에 그 핑계로 가족을 끌고 여행에 나섰다. 토요일 숙박인 데다 나흘 전에 예약을 하려고 하니 괜찮다는 곳은 다 차 있어서, 비어 있는 곳 중 후기가 가장 괜찮은 곳으로 겨우 예약을 했다. 마음이 번잡스러운지, 클릭을 하는 나의 손은 인가가 드문 깊은 산속으로 자꾸만 들어갔다. 지도 보며 후기 보며 예약하는데 네 시간은 걸린 듯 ㅠㅠ
토요일 오전에 나름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가평 가는 길은 왜 이렇게 좁고 막히는지... 멈춘 적도 없는데 꼬박 2시간 반이 걸렸다.
동생의 전시에 집중 +_+ 전시를 보고 점심을 먹은 뒤 숙소로 갔다. 숙소가 번듯하지 않은 줄은 알고 있었으나 변기에 물때가 보였고 도어락이 잘 안 잠겨서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돌아와서 그런 점을 지적하는 후기를 남길까 했으나, 주인분이 남편에게 내 인상과 태도가 아주 좋더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셨다길래, 그냥 후기를 안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숙소 근처 비가 조금씩 흩뿌렸으나, 큰아들과 동네 산책을 했다. 계곡 구경을 하고, 사과나무밭을 보고, 야생화가 잔뜩 피어 있는 들판을 걸었다. 저녁시간까지 심심해하는 아들들을 월풀에 집어넣었다.
첨벙첨벙 우린 놀러 가면 현지에서 사 먹는 편인데 여긴 산속이라 먹을 것을 준비해 갔다. 펜션에서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건 9년 만인 듯.
내 때와 달리 미국 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은 이전에도 몇 번 마쉬멜로우를 불에 구워 먹어 보고 싶다고 해왔다. 사실 집에서 해도 되는데 귀찮았으니까 ㅋㅋ 신이 난 아이들은 고기와 소시지를 대충 집어먹고 신나게 마쉬멜로우를 꽂아 감탄을 연발하며 먹어대더니, 엄마도 맛보라며 네댓 조각을 남겨두곤 자기들은 티비 보겠다고 들어가 버렸다. 그 덕에 두 시간 가까이 남편과 난 오붓하게 와인과 고기를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시골이니까 벌레와 모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밤이 되어도 모기는커녕 나방 한 마리 안 붙어서, 모기는 도시에 주로 사는 건가 의아스러웠다.
밤 열 시가 좀 지난 시각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 7시가 넘어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놓고 잤더니 아침에 꽃향기가 그윽했다. 아침으로 아이들은 요거톡을, 난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열 시도 안 되어서 체크아웃 한 뒤, 숙소 앞 계곡에서 놀기 시작했다.
날씨가 맑았음에도 불구하고 계곡물은 너무 차서, 10초만 발을 담그고 있어도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큰아들은 발이 시리다는 부모의 비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두 시간이 넘게 계곡을 헤집으며 올챙이를 잡았다. 춥고 무섭다던 작은 아들도 이내 아무렇지 않게 물속을 돌아다니기 시작. 언제 또 오겠니 맘껏 즐겨라란 생각도 하고, 얘들이 과연 언제쯤 집에 가자고 하려나 궁금해하며 뾰족하고 딱딱한 돌에 앉아 물멍을 했다.
이제 집에 가자~란 말은 결국 우리 입에서 먼저 나왔다. '너희들 곧 배가 고플 거야'와 '절대 그럴 리 없으니 우리는 더 놀아야 한다'는 실랑이를 잠시 벌인 뒤, 결국 아들들이 질질 끌려 나왔다. 차 안에서 대충 옷들을 갈아입고 출발했다.
점심 먹으러 온 곳은 가평의 크래머리 브루어리. 다양한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양조장인 동시에 끼니를 해결하기도 좋았다. 수제버거, 파스타, 피자 등을 주문했고, 남편은 맥주를 다양하게 맛보았다. 신세 졌던 이웃들이 생각나, 4캔짜리 세트를 몇 박스 사서 이웃들에게 나눔 했는데 다들 좋아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름 새로운 경험도 해보며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놀다 왔다.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는 건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고, 아이들과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여행 계획을 짜고 떠나는 건 언제나 내게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너무 귀찮아하지 말고 자주 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