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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롯데월드에서 프렌치레볼루션을 타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저거 타다가 사고가 나면 진짜 크게 다칠텐데,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생애 처음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를 기다리며 누워 있을 때도
옛날엔 반에 가까운 확률로 죽었다던 출산을 위해 누워 있을 때도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겨우 불안을 잠재우던 적이 있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
이런 근거없는 믿음이 산산이 깨어진 건 당연히 4월 16일 이후다.
단지 수술대에 올라가는 게 내 아이라서가 아니고
이제 난 저런 막연한 믿음이
국가, 법규, 시스템, 의료인의 양심을 뭉뚱그려 믿던 시절의 신뢰가 완전히 깨어졌기에
큰 아이의 수술을 앞두고 매우 불안해 했다.
만약 수술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 수술현장을 찍어야겠다
차트같은 건 어디서 확보할 수 있나 를 생각했던 건 물론이고
주치의가 직접 들어가서 수술하나
지금 간호사가 놓고 있는 링겔의 성분은 무엇인가
이 안약은 왜 넣어야 하는 것인가에 시시콜콜 질문하고 그들의 대답에도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사무치게 느낀 건 나의 무지, 나의 무능력.
믿을 수 밖에 없는 나의 빈곤한 지식
따를 수 밖에 없는 부모라는 나의 처지
'눈 먼 자들의 국가' 를 읽고 있다.
거기에 수록된 황정은 작가의 '가까스로, 인간'은 많이 와닿는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차피, 라고 말하는 것은.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고백을 해보자.
4월 16일 이후로 많은 날들에 나는 세계가 존나 망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무력해서 단념하고 온갖 것을 다 혐오했다.그것 역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여유라는 것을, 나는 7월 24일 서울광장에서 알게 되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백 일이 되는 날, 안산에서 서울광장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온 유가족을 대표해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녀는 말했다. 엄마 아빠는 이제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싸울 거야.
나는 그것을 듣고 비로소 내 절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다 같이 망하고 있으므로 질문해도 소용없다고 내가 생각해버린 그 세상에 대고,
유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공간, 세월이라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을,
말하자면 내가 이미 믿음을 거둬버린 세계의 어느 구석을 믿어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뭘 할까.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와 꼭 같은 정도로 내가 망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의 처음에 신뢰를 잃었다고 나는 썼으나 이제 그 문장 역시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_96~97쪽
요새들어 계속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나의 두 아이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할 수 있는가.
돈 많은 친구와 인맥을 만들어 주겠다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세먼지가 날아들지 않는 것..에도 물론 관심이 있지만
부당한 폭력을 당하지 않을 것,
설사 부당한 폭력을 당하더라도 정당한 과정을 거쳐
상대를 처벌하고, 본인이 치유받을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이민을 가야하나
내가 더 돈 있고 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하나
아이들을 학교나 군대에 보내지 말까
그러다보니 문득 떠오른
모교 이준희 선생님(교수님이라고 표현해야 하지만 난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서)께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머지않아 페북에 올리신 글.
옛날에 거지가 한명 살았다. 정말 찟어지게 가난했다.
...
남한테 빌어먹으면서도 근성은 있어서 절약하며 열심히 살다보니 일이 잘 풀리고 또 이런저런 기회를 잘 살려서 순식간에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었다.
남들이 수대에 걸쳐 재산 물려받고 속여가며 또는 힘으로 남의 것 뺏고 해서 모은 재산에 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자식들은 그렇게 말한다. 아빠는 왜 그렇게 교양도 없고 배운것도 없냐고. 당신이 부끄럽다고.한 개인도 무에서 유를 당대에 창조하기는 쉽지 않다.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50~60년 만에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최고로', '일등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요즘 우리 일부가 업신여기는 외국인 노동자의 나라들도 그때는 다 우리보다 잘 살았다. 3~50년대 사진전 같은데 가 보면 흔히 소말리아 사진 같은데서 본 듯한 아이가 한복을 입고 있다.
반만년 역사라고 자랑하지만 우리는 오천년 역사동안 한 번도 백성이 먹을 것을 걱정 안한 적이 없는 민족이었다. 한반도의 절반은 아직도 그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고.
이탈리아가 가장 강성했던 때가 로마시대였고, 몽골이 가장 강성했던 때가 징기스칸의 시대였다면 우리는 지금이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성하다. 한국인으로 태어나려면 지금보다 좋은 시대는 없다.먹고살기 위한 세계와의 경쟁은 그만큼 심했다. 그래도 우리는 남의 나라 침략 안하고 (베트남전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비교적(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정직하게 여기까지 왔다.
또 80년대 부터는 민주화도 빠르게 이루었다.하지만 먹고사는 것 해결하느라고 갖추지 못한 것도 많다. 시스템도 없고 비리도 심하며 지도층은 모두 이런저런 치부가 있다.
사고도 많고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내가 진짜로 불편한 건 그런게 아니다. 가끔 들리는 '이따위 나라', '이게 나라냐', '이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민가고 싶다' 이런 말들이다.
서방국가들은 그런 시스템을 갖추는데 몇 백년이 걸렸다. 우리는 시간이 없었던거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하면 된다. 세월호 사건 이전에도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등등 우리는 대참사를 통해 빠른 성장에 대한 대가를 처참하게 치루었다.
이렇게 빠르게 경제만 성장하지 않고 차근차근 모두 다 쌓아가면 되지 않았겠냐고? 우리 뒤를 봐라 결국 둘 다 이루지 못한 나라들 수두룩하다. 베트남은 한국이 발전 모델인데 그 사이에 중국이라는 생산대국이 생겨 그들을 뛰어 넘을 방법이 없다. 우리는 중국보다 먼저 산업화를 이루어 그나마 기회가 있는거다. 지금부터 하면 된다. 아니 꼭 해야 된다.그래도 이젠 우리나라 부러워하는 나라들 많다. 외국가면 한국비자 받게 해달라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왜 예전에는 이태원에나 가야 볼 수 있던 외국인들이 어디가나 넘쳐나는가? 그만큼 살 만한 곳이라는거다.
그렇게 정부와 공무원들 욕 하지만 외국에 가서 살아보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그나마 제일 친절하다.이민을 가겠다고? 어디로 가겠는가? 그렇게 시스템도 잘 되어있고 먹고 살기도 좋고 재난도 없이 모든 게 합리적인 유토피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정부에 대해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특히 비판적이어야 한다. 나이들면 무뎌지게 되어 있다. 나도 꼰대가 되어가니까 이런 글이나 쓰고 있지. 그래도 젊은이들이 비판적이고 변화를 갈망해야 달라지고 더 좋아지니까.
다만 아무리 울화가 치밀어올라도 '이따위 나라' 운운은 하는게 아니다.화가 나서 그냥 뱉어보는 말이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 이만큼 만들어진 나라다.역시... 나부터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이 당연한 귀결 ㅜㅜ
(그리고 간만에 성의있게 글을 써보려 했으나 기획과 시간의 부재로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이 귀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