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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책
    검은발개/낙서 2013. 5. 3. 00:46

     

     

    세살배기 아들은 산책 동무로 아주 적격이다.

     

    일단, 아들은 말수가 적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끊임 없이 괴롭히는 새되고 높은 말소리의 테러들을 떠나 귀엽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옹알거리는 아들과 함께라면 음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청각적 만족도를 안겨준다. 이따금씩, 엄마를 닮은 그 분홍빛의 조그마한 입술을 달싹거리며 노래라도 부르면 마치 그 순간 주변 모든 것이 정지한 채, 노래를 부르는 아들과 가만히 듣고 있는 나만 남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한 아들은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듯 하다. 사소한 것에도 끊임없이 감탄하고, 그 모든 것을 새로이 여긴다. 주관심사가 되는 것의 종류는 제한적이지만, 일단 주의를 끄는 것이면 온 힘을 다해 집중한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마주칠 때마다 마치 이런 생물은 처음 본다는 듯 환호를 연발하고, 공사장에서 둔탁한 기계음이 들려올 때마다 고개를 돌려가며 귀를 기울인다. 솔방울의 울퉁불퉁한 촉감에 지레 겁을 먹어 뒷걸음질 치고, 도로를 지나는 버스의 색깔을 일일히 구별하기도 하며, 저 멀리 경찰 마크가 살짝 보이기만 해도 커다란 보물을 발견한 양 크게 놀라며 기뻐한다.

     

    흡사 이 모든 풍경의 단 한 귀퉁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은 듯한 그 까맣고 둥글고 커다란 눈동자, 바람에 나부끼듯 자유롭게 모든 방향으로 흔들어대는 양 손, 언제나 눈을 부릅뜬 채 무언가 흥미를 끌 법한 장면을 쫓고 있는 자그마한 이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야말로 우리 여정의 도착지, 애초 아무런 의도가 없었던 가벼운 산책의 숨겨진 목적지가 아닌 것인가 하는 착각마저 품게 만든다. 동시에 그것은 나로 하여금 아들의 시각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게 만들고, 시점의 변화는 감각적 일탈과 함께 일종의 환희를 안겨준다. 나는 내게 안겨 있는 아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또한 듣고 느끼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일찌기 내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즐거움이라고 감히 말할 수 밖에 없다.

     

    과묵하지만 열정적인 동반자, 새삼스레 고마움을 느끼며 또한 다음번의 산책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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