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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님 맞이 대작전
    검은발개/낙서 2010. 3. 16. 05:58

    부산에서 부모님이 상경하신다는 연락이 오자마자, 아내는 즉각적으로 데프콘-원 상태에 돌입했다. 그녀는 모든 가구 속 물건들을 재배열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난데 없는 봄맞이 대청소를 선언했다. 아내의 거대한 계획, 대(代)시부모 2010 작계5029-Ⅱ에 따라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청소도구와 부모님 운송수단으로 화했다. 일련의 지시에 따라 여러 상자의 잡동사니를 치우고, 마루와 안방과 주방과 작은 방을 쓸고 닦았으며, 각종 침구의 먼지를 제거한 뒤 차를 몰고 터미널로 나가 부모님을 모셔오는 역할이었다. 아내는 조신하고 가정적인 며느리의 상을 프레젠테이션하기 위해 시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음식-냉이국, 도토리묵, 견과류 등등-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업무량의 눈에 띄는 차이가 조금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이미 자의식은 버리고 일개 병사로 자리매김한 내게 불평따윈 사치였다. 일찌기 대관령부대 연대장 강모대령은 병력들의 사소한 불평불만은 지휘관이 반드시 무시해야 할 요소 중 하나라는 명언을 남겼었다. 훗날의 적당한 포상만 있다면 현 병력의 불만들은 얼마든지 상쇄 가능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내 멋대로 적절한 포상을 기대하며, 이 모든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로 결심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난 능숙한 청소 실력과 드라이빙 스킬을 운용하여 내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고, 집에 도착한 부모님 두 분은 처음 한 것 치고는 제법 괜찮은 아내의 냉이국에 감탄했다. 

    이튿날 오후 부모님이 귀향하자, 아내는 모든 경보를 해제하고 자축의 딸기케이크를 맛보며 자신의 업적을 스스로 찬양했다. 나또한 자신의 탁월한 미션 수행 능력에 뿌듯했지만, 이틀간의 휴일을 자연스럽게 날려버리고 또다시 출근준비를 하고 있자니 불현듯 서러움에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포상 안주면 탈영할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하이쿠 -
    보람찬 하루일을 끝마치고서 눈떠보니 아니 또 출근시각.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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