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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유로움
    소알/구례 2022. 4. 12. 11:39

     

     

    반경 1km 내에 살아 움직이는 건 나 뿐

     

     

    농촌살이의 최대 장점은 부대끼지 않는다는 것, 여유롭다는 것이다. 

    일단 길이 막히지 않는다. 나가고 싶으면 차를 몰고 슝 나가면 되는데, 직선 도로 하나당 차 한 두 대 마주치는 정도다. 가장 번화한 읍내에 나가더라도 대체로 원하는 곳에 차를 세울 수 있고 주차료는 없다. 서울에서 주말에 놀러나가려면 한동안은 막힐 각오를 하고 출발해야 했고, 그건 계획단계부터 숨막히는 일이었다. 시내에서 초행길을 가려면 주차장소와 주차요금 때문에 지도앱과 주차장앱과 블로그 몇 편 정도는 검색을 하면서 몇 십 분씩 투자해야 했다. 막상 도착하면 그마저 어그러지는 경우도 많았고 할인 자격이나 영수증 처리가 예상과 달라 주차료 폭탄을 맞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걱정이 없다는 것 만으로도 운전은 매우 가볍고 신나는 일이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신호등이 많지 않아 사거리에서 좀 위험할 수 있다는 것과 내비가 최적의 경로랍시고 가끔 굳이 아주 좁은 도로로 안내하기도 한다는 점이 있다.

    또 내 집이 아니어서 느끼는 자유로움도 있다. 서울집에서 나는 언제나 가족 모두에게 쾌적한 환경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실천은 별개로 치자) 이걸 바꿀까, 저걸 고쳐야하지 않을까, 이 부분을 정리할까, 뭘 버릴까. 하지만 이 곳에선 그냥 주어진대로 산다. 없는 건 없는대로, 불편한 건 불편한대로 지낸다. 집에 문제가 생긴 건 사장님께 얘기하고, 사소한 건 내가 슬쩍 바꾸는 정도. 살림이 단출하니 정리와 관리에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러워도, 내 집 아니니까..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거리가 멀어지다보니 사람을 챙겨야 할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 있다. 가족, 친구, 친척, 이웃 등 관련을 맺고 있던 수많은 인간관계가 잠시 느슨해져 있어서 이 또한 아직은 홀가분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그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에 홀로 뚝 떨어져 보니 그간 내 삶이 얼마나 촘촘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도 숨쉬듯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일상은 계속 되지만 오롯이 내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 

    가장 좋은 건 사람들과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30분씩 산책을 하면 자동차는 가끔 보여도 사람의 형상은 한 번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반경 1km 이내에 사람이 전혀 없어서, 내가 길 한가운데서 춤을 춰도 아무도 못보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옷도 자유롭고 행동거지도 자유롭다. 곱게 화장을 하거나 몸에 붙는 옷을 입거나 발이 불편한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다. 아니, 굳이 이런 디테일한 편리말고 그냥 주변에 사람이 없음으로써 느끼는 자유가 있다. 보이는 공간이 다 내 것인 것 같은 쾌감, 쭉 뻗은 팔과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바람같은 것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지 않고 높은 건물과 빽빽한 도로 사이에서 압박받지 않는 느낌. 

    하지만 요새는 사람 구경 차 구경을 잔뜩 하는 날도 있다. 구례가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을 주말마다 느끼고 있다. 꽃이 피기 시작하자 주말마다 차들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온다. 그래서 현지인인 나는 주중을 이용하거나 주말에 아침 일찍 움직이며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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