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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종
    소알/투병 2021. 11. 5. 13:53

     

    2021년 10월 30일 새벽 4시 경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전주 월요일에 마지막 항암을 하실 때만 해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좋진 않았는데 원래 항암 후 며칠간은 가라앉으니까...
    수요일부터는 가래와 기침도 많고, 씹어 삼키는데 오래 걸리길래 슬슬 못 삼키게 되시는 건가 염려했다. 
    혈당도 자꾸 떨어지고 열도 38도를 넘어갔는데 응급실에 가면 워낙 힘드니까 해열제를 먹여 버텨보았다.
    그러다 결국 금요일 저녁 산소포화도가 80 아래로 떨어지길래 급하게 응급실에 갔다.

    보호자를 교체할 때 72시간 내의 코로나 음성 결과만 인정해주기 때문에 우린 번갈아 코로나 검사 결과를 하며
    언니 2박, 엄마 2박, 나 1박, 엄마 2박, 그리고 내가 교대하러 들어간 금요일, 아빠가 의식이 없었다.
    오전에 엄마를 만났다던 의사가 병원 밖에 있다가 일부러 나를 만나러 들어왔선
    매우 위독한 상태라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한다, 오늘을 넘기실 수도 있지만 못 넘기실 수도 있다고 말하며
    작성해 놓았던 연명치료거부 의사를 재확인했다.

    난 의사의 그 말을 듣고서도
    의식 없이 산소호흡기만으로 2주를 넘게 누워계셨던 외할머니를 기억하며
    이 상태로 1~2주는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모니터의 숫자들은 조금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안정적인 수치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빠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와 함께 있는 오늘 가지는 말라고도 했다.

    오후 11시 경 승압제를 올려도 혈압이 조금씩 떨어지자 간호사가 '다른 보호자들더러 대기하라고 하라'고 했다.
    난 간호사가 오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코로나 검사라도 받게 빨리 오라고 했는데
    남편과 엄마와 언니가 병원 로비에 도착했을 무렵
    당직의사는 동맥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임종 수치에 임박했다며 처치실로 아빠를 옮겼다.
    우리 넷은 4중 보호장구를 쓰고 15분씩 일대 일로 임종면회를 했고 엄마가 아빠 곁을 지켰으며
    나와 언니는 병원로비에 누워서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 4시 5분 경 엄마의 연락을 받아 올라갔고,
    당직의사가 늦게 오는 바람에 사망선고는 4시 58분이 돼서야 들을 수 있었다.

    아침 열 시 경에 빈소가 준비되었고, 
    그 다음 날 오후 두 시에 입관을 하였고,
    그 다음 날 오전 8시 반에 발인하여 정오경 하관하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아빠는 이 묘자리를 미리 사놓았고,
    이 근처에 사는 외삼촌이 소식을 듣고 준비해주셔서 당황하지 않고 잘 모실 수 있었다.
    난 애초에 아빠가 여기에 진짜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곳이 너무 멀다고 생각해왔어서 
    과연 묘소를 살피러 갈 것인가 스스로 의구심을 가져왔는데 
    이번에 가보니 계절이 아름답고 길도 좋아서 매년 잊지 않고 드라이브 하는 마음으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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