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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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슈소알/구례 2022. 6. 7. 12:37
다른 고양이와 함께 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면서 우리를 걱정시켰던 흰 고양이는 아이들에게 슈라는 이름을 받았다. 암만 봐도 녀석은 이 곳을 자의적으로 떠날 것 같지 않았다. 얠 어쩌면 좋으냐, 푸념을 하며 옆집 언니와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데 배와 뒷다리 쪽에 진드기 같은 게 동글동글 붙어 있었다. 야 칠칠치 못하게 왜 진드기를 달고 다니냐 하며 슬슬 진드기를 떼다가 고양이의 젖꼭지를 보게 됐는데 젖꼭지가 불어 있었다! 얘 이미 임신했나봐....... 경악에 찬 우리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골골대며 잠만 잤다. 어쩔 수 없다, 중성화를 하면서 중절도 시키자. 비용은 우리 둘이 대고 회복할 때까진 옆집 언니네서 돌보기로 했다. 회복 후엔 입양처를 찾아보거나 나가서 살고 싶어 하면 내보내기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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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크로니클검은발개/낙서 2009. 3. 14. 23:17
찡찡이가 전력을 다해 날 물었다. 왼손 검지 밑으로 동그란 구멍 두개가 송송 뚫렸다. 송곳니 자국이 마치 뱀파이어에게 물린 듯, 꽤 그럴 듯 하다. 두개의 피딱지가 가만히 날 바라본다. 입 모양을 그려주니 스마일 마크다. 한동안은 상처부위가 퉁퉁 붓고 욱신거리며 꽤나 아팠다. 항생제와 소염제를 며칠동안 먹고 나니 가라앉는다. 제법 심한 상처이긴 하지만 찡찡이를 원망하진 않겠다. 고양이에게 물리는 일이란 예로부터 홍수, 산사태 등과 함께 대표적인 천재지변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뻥이고, 실은 내가 진공청소기로 찡찡이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물릴 만 하다.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 오랜 교훈을 찡찡님께서 몸소 일깨워주셨다. 정의는 승리하리라. 러브 앤 피스. 갓뎀. 우연한 사고와 하찮은 상처들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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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찡찡검은발개/낙서 2008. 5. 10. 23:30
찡찡이를 결국 중성화시켰다. 털을 밀어낸 하얀 배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엑스자로 꿰메진 검은 실밥 다섯 가닥이 거짓말처럼 단단히 묶여있다. 생후 8개월만에 난소를 들어낸 암컷의 심정이란 - 나로서는 평생을 지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긴 뭐, 이 녀석에게 딱히 수술 후 심정 같은 것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봉합 부위를 못 핥도록 입혀놓은 구속복(거창하게 들리지만 이소룡이 입던 검은 줄무늬 노란 옷이다. 귀엽다.)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있는 것이 약간 피곤할 뿐인 듯 하다. 장 그르니에는 수필 에서, 고양이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찡찡이 역시 마찬가지여서, 몸이 자유로울때는 세워 놓은 매트리스건 주방 찬장 위이건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훌쩍훌쩍 올라타곤 했고 또 그것을 무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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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고양이검은발개/낙서 2008. 4. 14. 23:43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휴식 시간 중에 멍하니 커피를 마시다가 잠시 찡찡이가 혼자 밥을 잘 먹고 있을지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소현이는 점심에 뭘 먹었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든다. 그 두 사념은 서로 컷cut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디졸브dissolve되어 나타난다. 찡찡이가 밥그릇에 고개를 쳐박고 야금야금 사료를 씹어먹는 모습이 서서히 흐릿해지면, 그 화면 위로 학교 식당에 앉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숟가락을 열심히 움직이는 소현이의 모습이 부드럽게 선명해지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한 쪽은 네발로 걷는 털복숭이이고 한 쪽은 두 발로 걷는 맨몸이다.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성별 뿐이지만 그조차 한쪽은 암컷, 한쪽은 여성이라고 불리니 엄연히 다르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찡찡이를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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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찡찡검은발개/낙서 2008. 4. 7. 00:34
창밖으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넓지 않은 방 한 가운데엔 올해 29살의 남자가 멍하니 앉아있다. 그의 무릎 위에선 발정난 암코양이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한다. 행여나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나 울어댈까봐 그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다리는 저려오고, 손가락으로 코 끝에 침을 발라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저 참는 수 밖에. 아 굉장히 슬픈 광경이다. 더 슬픈건 그 남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찬 기운 이미 멀리 가버렸으나 겨울의 뜻 아직 내 방에 남았네. 벚꽃 지려면 여태 멀었는데 어찌하여 찡찡이는 봄바람이 들었는가. 우울한 마음을 한시로 표현해보았다. 써놓고 보니 어디선가 본 문장인 듯 하다. 뭐 어떠랴. 이걸로 돈벌겠다는것도 아닌데. 한문은 전혀 모르니 그냥 한글만 쓴다. 어쩌면 소알양이 한자로 바꿔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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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정기소알/일상 2008. 4. 5. 23:43
태어난지 아직 6개월도 안된 (것으로 추정되는) 찡찡이가 어찌나 조숙한지 벌써 발정기가 온 듯 하다. 어젯밤이 시작이었다는데, 밤새 앵앵 울어대는 바람에 오빤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오늘 가서 엉덩이를 통통 쳐주니 내 팔을 잡으며 뭔가를 느끼는 듯한 표정이길래; 아아 비극이지만 확실하도다. 일찍 시작한 탓인지 다행히도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은데 계속 놔두다가는 오빠가 먼저 병이 날 터라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겠다고 맘먹었다. 원래 나의 계획대로라면 반년동안 손이 좀 가더라도 잘 보살펴 준 다음에 성묘가 되자마자 교배시켜서 새끼도 한 번 낳게 하고 그 중에서 가장 예쁜 딸네미 하나 빼고 분양하고, 그 다음에 중성화를 시키자는 것이었는데... 이런. 물건너가고 말았다. 출산 경험이 없는 인간 여성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