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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밤엔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증에라도 걸린건가 싶어 덜컥 겁이 나 검색질을 해보니, 너무나도 손쉽게 잠을 이룰 수 있다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어 반가웠다. 친절하고도 따스한 성품을 지녔음이 분명한 한 블로거에 말에 따라 첫째날 밤에는 따뜻한 우유로 시도를 해보았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건강을 챙기는 일에는 인색하거나 흐리멍텅한 사람이 아닌지라, 그 효과가 확실하게끔 1리터쯤의 우유를 펄펄 끓여 30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후후 불어가며 모두 마셨다. 부푼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왠걸, 따끈한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위장 속 우유의 온기와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끝내는 뱃 속 깊숙한 곳 어디선가 광폭한 쓰나미가 덮쳐와 맹렬히 내 창자들을 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약 4시간 가량의 힘든 사투 끝에 겨우 난 화장실 변기 위에서 벗어 날 수 있었고, 퀭한 두 눈 위로는 어느새 밝고 따스한 새벽의 햇살이 슬그머니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한 채 무릎을 꿇는 것은 패배주의에 절은 루저들이나 하는 짓. 난 망설이지 않고 그 다음 날 밤 또다른 방법에 착수했다. 양파를 가늘게 채썰어 접시에 담아 머리맡에 둔 채 누우면 잠에 쉽게 빠져들 뿐만 아니라 숙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손에 넣고, 냉장고에 있던 저주스런 우유들은 몽땅 싱크대에 부어 버린 뒤 양파를 꺼내들었다. 역시나 흐리멍텅한 일처리를 증오하는 나는, 보다 확실한 효과를 위해 3개의 양파를 썰어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겼다. 도마 위에 양파를 올려놓고 식칼로 착실하게 채를 썰던 도중, 스물아홉살이나 먹은 사지멀쩡한 놈이 자정에 혼자 부엌에 앉아 양파를 세개나 썰어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처량했던지 뭔지 몰라도, 갑자기 폭력적인 양의 눈물이 강제적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양파를 썰면 눈이 맵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잠시 잊었던 나는 스스로를 달래며 아무 생각 없이 맨손으로 두 눈을 비볐고, 이어 곧 혼이 나가버릴 정도로 따가운 두 눈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려대며 보이지 않는 화장실 수도꼭지를 향해 달려가다 문턱에 걸려 나자빠지는 수모를 겪었다. 욱신거리는 발가락과 따가운 눈을 찬물로 겨우 진정시키고 나자 불현듯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하고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정신병적인 증세가 모조리 불면증 탓이라는 망상에 빠져 서둘러 잠자리를 준비하고는 머리맡에 양파가 담긴 접시를 두고 누웠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늘 462km가량의 거리를 두는 법. 난 밤새 양파의 매운 독기 탓에 잠을 이루기는 커녕 눈물을 줄줄 흘리며 괜시리 취업, 가난 등의 비참한 현실 등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밤, 썰어 놓았던 양파들에 혼자 욕을 퍼부어대며 모조리 볶아버린 후, 나는 또다른 방법을 발견했다. 피로가 극도로 쌓여있을 때엔 한숟갈 정도의 식초를 섭취함으로서 말그대로 몸을 '연하게' 만들어 쉽게 잠에 빠질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이제까지 그런저런 의견들을 부인해보지도 않았고, 이제와서 '설마...'라고 해봤자 왠지 궁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잠을 못 이룬 탓에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지도 않았는지 이 의견에 추천은 커녕 저주의 댓글들만 잔뜩 달려있다는 사실조차 발견하지 못한 채 서둘러 일에 착수했다. 줄곧 '일처리는 확실한게 좋다'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던 난 그 '한숟갈'이라는 말에서 티스푼 한숟갈 보다는 밥숟가락 한숟갈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렸다. 곧바로 찬장에서 사과식초를 꺼내 숟가락에 듬뿍 담아 쭉 들이켜니, 그나마 남아있던 도덕이고 이성이고 모두 허공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영혼까지도 맑고 깨끗하게 정화되는 듯 했다. 맹세컨대 내 평생 그렇게 완벽하게 온 몸 구석구석까지 깨어있던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일처리 제대로 한답시고 빙초산을 사와서 먹었다면 남은 평생 한잠도 못이뤘을 것이라는 확신 또한 들었다.
이쯤되니 이건 뭐 세상 모든 블로거들과 인터넷의 발명자까지도 고소할 수 있겠다는 망상이 들었고, 당분간은 인터넷에서 하는 말 따윈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리라 맹세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찰나, 잠을 못이뤄서 죽겠다는 내 고민을 전해들은 한 지인이 친히 찾아와 무려 자기 가문에서만 전해내려온다는 비전의 방법을 전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좋은 방법이라면 왜 니들 가문에서만 전해지고 있냐는 의구심과 함께 본능적인 망설임이 들었지만,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는 심정과 '그래 어디 갈데까지 가보자' 라는 오기를 등에 업고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지인 놈은 한참 동안 자기 가문만의 비전을 거리낌 없이 알려주는 우리 둘 사이의 친밀하고도 깊은 우정에 대하여 설을 풀더니, 소주 반병 정도를 뜨끈하게 데운 뒤 계란 노른자를 넣고 잘 섞어서 마시라는 무시무시한 의견을 제시했다. 두렵긴 했지만 뭐 죽기 밖에 더 하겠냐는 기분으로 그날 밤 그 말을 따랐지만, 새벽 1시경에 이건 뭐 진짜 죽겠구나 라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죽기 전에 그 놈부터 찾아내어 죽여야 한다는 각오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앞으로 또 잠이 오지 않을 때, 그 망할 칵테일을 마실 것이냐 아니면 몸에 신나를 바르고 불구덩이로 뛰어들겠느냐 하는 두가지 기로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후자의 것을 택할 것이다. 그 정도로 거대한 고통을 유발하는 방법이 가문의 비전이라니, 먼 조상 중에 외계인이라도 있는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나 멍청함에는 약이 없는 법. 난 또다시 다른이들의 소위 '민간요법'이라는 방법을 곧이곧대로 듣고는 뜨거운 자스민차를 한주전자 가득 마셨다가 쓰라린 위를 부여잡고 울부짖기도 했고, 미지근한 물을 찬물로 착각한 사람의 말을 따랐다가 얼어죽을 뻔 하기도 했으며, 라벤더 향초를 방 안 가득 켜놓았다가 질식사 직전에 살아났기도 했다. 심지어는 따뜻한 우유에 식초를 듬뿍 첨가해서 마시라는 말을 듣고는 난생 처음 여자한테 욕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사람의 몸을 가지고 행한 가장 잔인한 형태의 실험이었으며, 정신을 놓아버린 자의 비참한 객기이기도 했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고 난 뒤, 불면을 치료할 바에야 잠을 안자는 것이 3,694,548배는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그래서 오늘 밤도 새벽 6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않고 낙서를 하고 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불면의 밤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나 자기 몸뚱아리 하나 따위 아끼지 않는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저 위의 방법들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무릎꿇고 비는 바이다. 부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따위 민간요법을 따르느니 잠을 안 자는 것이 더 오래 사는 길이다. 사람은 자기 몸 귀한 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