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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가 아기를 낳기 전까지 아기라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도 그리고 지금도 문득문득 신기하다.
사람이라는데, 내가 알던 사람이랑은 전혀 다른 존재.
가장 신기했던 건 얼굴 길이보다도 짧은 팔 길이였지만.
자는 모습을 바라보면
시뻘건 얼굴은 넙데데하고 머리는 숭숭 빠져있으니 참 못생겼다 싶은데
이상하게 사랑스럽다.
가만히 숨내음을 맡아보면 그 향기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안고있다보면 그 따뜻함과 말랑말랑함에 마음이 포근해지고
나를 향한 아이의 웃음에, 옆통수에 주름이 갈 정도로 웃어진다.
물 묻힐 필요없이 사방에 흘리고다니는 침으로 바닥을 닦더라도 더럽기는 커녕.
큰 아이의 입냄새는 이제 동생만큼 향기롭지는 않지만
기분 좋을 때 절로 나오는 엉덩이의 실룩거림이라든가
뭔가를 만들어놓고 보여주고싶어서 신나게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았을 때 배를 탕탕 두드리며 짓는 미소가
동생 못지않게 사랑스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이 나고 가끔은 도망가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흔히들 얘기하는 어미의 사랑과 희생(그 고결함!)이라는 것이
이런 짜증과 인내가 모두 포함된 의미라는 것,
하지만 키우는 수고로움을 일순간에 지울 정도로 사랑스러운 게
내 새끼라는 것 역시 깨달은지 이제 겨우 3년째다.
요새 볼 때마다 울컥하는 이야기.
배우자를 잃은 사람, 부모를 잃은 아이를 지칭하는 단어는 있지만
자식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는 없다는 것.
그 참담함에는 감히 어떠한 단어도 붙일 수 없나보다는 것.
부모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그 마음을 어찌 다 알겠냐마는...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라는 문장을 기사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거대한 벽면을 빼곡히 메운 영정들과
그 사진 속 하나하나, 툭 치면 재잘재잘거릴 것 같은 아이들의 뽀얀 얼굴을 보며
기가 막히고 현기증이 났다.
너희와 너희의 부모를 잊지 않고
너희의 죽음을 방기한 나의 죄 또한 절대 잊지 않으마.
정말 미안하다. 이런 어른들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