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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지 두달하고도 벌써 보름가량 흘렀다. 돼지우리 같은 자취방은 대궐(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같은 저택으로 바뀌었고, 해가 지면 데려다주던 소현이의 목적지는 문래동 집이 아니라 가까운 안방 침대로 바뀌었다. 본의 아니게 차가 한대 생겼고, 이제 마주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2세 계획에 관해 물어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난 정서적으로 무척이나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여태 몰랐는데, 결혼이란 좋은 것 같다.
아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건 바로 신혼여행.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이따금씩 하와이에서 놀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뭐 생각난 김에, 사진들이나 올려봐야지.
낮과 밤을 뛰어넘어 부지런히 날아오다보니 하와이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덥지 않아서 좋았고, 생각보다 습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졸려서 멍한 머리로 호놀룰루 공항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가 마우이로 타고 갈 주내선 비행기가 보였다. 두근두근
배가 너무 고파서 마우이에 도착하자마자 숙소 근처 식당을 들렀다. 사방이 훤한 레스토랑 안에서 난 로코모코를, 소현이는 치즈버거를 먹었다. 맛은 뭐 그럭저럭.요게 치즈버거, 저 앞에 난도질 당하고 있는 것이 로코모코. 로코모코는 하와이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데, 밥에다 햄버거 패티와 계란 후라이를 얹고 돈까스 소스 같은 걸 뿌린 것이다. 내용물에 비해 값이 비쌌지만 양이 많아 괜찮았다. 양키는 역시 뭐든 다 사이즈다.
리조트 수영장에서 바라본 바다. 후지 똑딱이의 무슨 이상한 자동 기능으로 찍었더니 일몰 광경이 제법 예쁘게 나왔다. 하지만 실제론 조금 더 밝다. 사람들이 이래서 죽자고 사진 공부를 하나보다 하고 느낀 순간이었다.
밤의 리조트. 어둠 속에서 리조트 건물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나. 왠지 뒷모습만 봐도 무척 촌스럽다. 관광객이 아니라 청소하러 온 직원 같다.
밀짚모자를 잠시 벗어 둔채 손님용 의자에 앉아 한 숨을 돌리는 잔디깎이 일용직 노동자.
육체노동으로 다져진 종아리 알통이 나빌레라.
하늘이 예쁘니 구름도 예쁘구나.
저 바다 멀리, 일출이 미친 듯이 아름답다는 할레아칼라 화산이 보인다.
하지만 그냥 제주도라고 우겨도 믿을 만한 사진이다.
그늘 밑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모님.
역시 제주도 같다.
이래서 사람도 간지가 중요한거다.
다음날 찾아간 라하이나. 유명한 가게인데, 이름이 라하이나 피쉬컴패니 였나. 뭐 어쨌든 양키들이 많았다.
가게 사장님. 흐뭇한 표정으로 줄서있는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다. 캬캭
해변과 마주한 테이블에 앉아 달콤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사모님이다. 눈이 부셔 죽겠는데도 굳이 땡볕 내리쬐는 자리에 앉아 애써 미소를 짓고 계시다.
사모님은 이 자리에서 이전 손님이 두고간 팁을 살펴보다 양키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나도 덩달아 수줍었다.
샌드위치.
내가 먹은 피쉬 앤 칩스. 죄다 튀긴 건데 느끼하지가 않았다. 감자튀김은 맥도날드 따위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메뉴.
사람을 가리지 않던 예쁜 회색 고양이. 이 곳의 고양이들은 우리나라와 유럽 고양이들의 성격을 반반씩 섞어 놓은 듯, 사람을 살짝 경계하면서도 너무 피하지는 않았다. 요녀석은 이 나무 아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라하이나 거리의 건물들은 모두 낮고 예뻤다. 이차선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 가게와 야자수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질리지가 않았다. 거기다가 적당한 날씨가 더해져 상당히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빈둥거릴 시간은 없기에 곧 할레아칼라로 고고씽.
화산 아래 산장으로 가는 길에 선명한 무지개가 걸렸다. 거의 이십년 만에 보는 듯한 커다란 무지개였다. 대기가 맑아서 그런지, 이런 무지개들이 제법 많았다. 갑자기 이곳이 살기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산장 침실. 통나무집 속 방은 예상보다 아늑하고 귀여워서 기분이 좋았다.
산장 발코니에 앉은 노동자. 새로 산 슬리퍼가 발가락을 죄어온다.
산장 옆에 있는 레스토랑.
여기서 먹은 음식들은 굉장히 비쌌지만 만족스러웠다. 노련한 웨이트리스와 따뜻한 분위기 덕분이었나.
지금 정리해보니까 일정들이 죄다 이동-먹다-자다-이동-먹다-자다 이렇다. 하지만 뭐 여행이란게 다 그런거 아니겠나. 꺄하하하
또 가고 싶다. 쭌 신혼여행 갈때 트렁크에라도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