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발개 2010. 3. 8. 05:32

샌드맨. 10: 장례 전야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NEIL GAIMAN (시공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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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시에 잠이 깼다. 눈이 뻑뻑하다. 꿈 속에서는 항상 슬픈 일들만 일어난다. 때로는 잠들기가 두렵다.  

이미 한번 읽었던 <샌드맨>을 다시 보고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처음 읽을 때보다 되새길 때 더욱 큰 빛을 발한다. 몰랐던 의미들을 재발견하고, 오해했던 부분들은 새로이 정의된다. 책장을 펼칠 때마다 또다른 기쁨을 안겨주는 이야기들은 이른바 고전으로 불린다. 닐 게이먼의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 만화는 완성된 순간 이미 고전이다.

샌드맨은 꿈의 왕이다. - 아니, 사실 샌드맨이란 호칭은 적절치 않다. 그것은 오랜 동화에 나오는, 어린 아이들을 잠에 빠트리는 인물의 이름이자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에 불과하다. 그 이름은 꿈의 왕의 조그마한 측면이자 특징 중 하나 일 뿐이다. -  꿈의 영토를 다스리는 지배자이고, 세상 모든 꿈이 사라지는 마지막 날까지 존재하는 영원 중 하나이며, 사실 꿈 그 자체이다. 그에게는 운명, 죽음, 파괴, 욕망, 절망, 분열이라는 형제들이 있고, 그들 또한 불멸의 존재이다. 만화에선 그들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꿈을 중심으로 시간에 관계없이 펼쳐진다.

또 다른 소설 <신들의 전쟁>에서 보여지듯, 닐 게이먼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신'이라는 존재의 이유가 사람들의 믿음이라는 점이다. 고대의 신들-게르만 신화의 오딘, 토르, 로키 세 형제와 이집트의 그 수많은 신들, 그리스의 아름다운 존재들 등등 - 은 그들의 신도를 잃는 순간 죽게 되는 필멸의 개념이다. 이들은 마치 인간처럼 번민에 빠지기도 하고, 제한된 능력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한 각각 다른 세계의 신들이 한 장소에 모여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그 자체가 매혹적인 광경이자 꿈같은 이야기들이다. 닐 게이먼은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이런 상황들을 능청스럽고도 정밀하게 엮어나간다. 신화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 만으로도 이미 탄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영원의 일곱 형제들은 각각의 개념을 의인화시킨 존재이자 개념 그 자체이다. 운명은 과묵하고 죽음은 자비로우며 욕망은 탐욕스럽고 분열은 혼란스럽다. 말장난 같은 이 캐릭터들은 특유의 형태를 지닌 채 대부분의 이야기들의 바탕이 된다. 꿈과 욕망의 끊임없는 다툼, 사라진 파괴를 향한 분열의 집착, 형제들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비로운 죽음, 묵묵히 지켜보는 맏형 운명. 캐릭터에 대한 요약이 곧 시적 운율로 치환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들. 

만화의 제작 방식은 좀 독특하다. 모든 이야기들은 닐 게이먼에 의해 쓰여지지만, 매회 그림은 각자 다른 삽화가에 의해 그려진다. 책 한 권에서 분량에 따라 대여섯 가지 스타일의 개성적인 그림들이 등장한다.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러한 방식이 채택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방식의 장단점을 선뜻 판별해내기란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헷갈리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하다. 뭐 그정도. 헤헷.

현재 10권까지 출간되었는데, 완결은 11권이 나와야 끝나는 듯 하다. 리뷰는 대충 다 썼으니 마지막권 빨리 출간하라고 출판사에 메일이나 좀 써야겠다. 당최 나올 생각을 안하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