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와 여의도
지하철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혜화역에서 무척 노쇠한 할아버지 한 분이 사람들에게 '어이도'를 어떻게 가냐고 물어본 것이 시작이었다. 수많은 아줌마와 아저씨들은 과연 '어이도'라는 것이 여의도냐 오이도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방향 없는 고성들이 오고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논쟁에 끼어들었다.
여의도학파의 창시자격인 한 아줌마는, 할아버지 치아의 성치않은 상태로 인한 불완전한 구강구조로 인해 '여'라는 발음이 완벽하게 표현되지 않은 것이라는 '발음삐꾸론'을 내세우며 5호선으로 갈아탈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자 오이도학파의 열렬한 지지자인 한 아저씨가 그 할아버지의 차림새를 보자면 의심의 여지가 단 한치도 없이 오이도 사람이라는 '변두리간지론'를 소리높여 주창하며 스스로의 자리를 양보하였다. 빈자리가 생긴 것이 그저 고마운 할아버지는 덥석 의자 위에 앉았고,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그 행동으로 인해 논쟁은 오이도학파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 한 유령이 전 지하철을 배회하고 있다. 오해라는 유령이"라는 말로 서두를 띄운 다른 아저씨가 나서며 저토록 노쇠한 노인분이 대체 혜화에서 오이도까지 다녀갈 일이 뭐가 있겠냐며 뭔가 뜬금 없는 반론을 제기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옆자리 아줌마는 다시금 할아버지에게 지금 어디 가시는건데요오오 라고 큰 소리로 되물었고 돌아온 할아버지의 대답 "어 우리 딸네집"은 더욱 커다란 카오스 상태를 야기했다.
그 딸이라는 사람의 집이 도대체 어디일까를 놓고 사람들의 궁금증이 폭발에 이르기 직전, 한 아줌마가 그렇다면 그 딸네집에 전화를 해보면 될것아니냐며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휴대폰조차 없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그 아줌마는 할아버지가 외우고 있는 번호로 통화를 시도해보지만 아뿔싸 할아버지는 지역번호를 알지 못했다. 이쯤되자 사람들의 좌절은 지하철을 거의 창백한 푸른빛으로 물들게 할 정도였다.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던 한 아저씨가 시각 자료를 활용한 직접적인 접근법을 시도했다. 지하철노선도를 할아버지의 눈앞에 들이밀며 여의도와 오이도를 번갈아가며 가르켰다. 여기 or 저기? 라는 질문법은 참신 한 듯 했으나 너무나도 복잡한 노선도 자체에 익숙지 못한 할아버지의 '뭥미?' 라는 태도로 인해 금세 수포로 돌아갔다. 이젠 보고 있던 나까지 미칠 지경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대책 없이 지하철을 탄 할아버지를 향한 원성까지 털어놓기도 하였다.
양 학파의 수장격인 몇몇 사람을 제외한 논쟁이 시들해지고, 될 대로 돼버려라 라는 상황에 빠진 듯 할 때 할아버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울역에서 내려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허무할수가.
내가 왜 이런 글을 여기 쓰고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황망 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