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알/구례

지네의 2차 습격

소알 2022. 8. 24. 10:25

 

7월 이후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은 것 같다. 아침에 비명이 들려오면, 아 오늘은 저 집이 지네와 동침을 했구나 한다. 그래도 다들 운이 좋으신건지 지네한테 물린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둘 뿐이다. 여덟 집 중 세 집만이 모기장(아니.. 지네장)을 치고 잔다. 나도 매일 모기장을 걷고 펴는 게 귀찮지만 워낙 다양하고도 많은 벌레가 집안을 들락거리니 맘편히 자고 싶어서 그 수고를 계속 해왔다. 하지만 결국 또 물리고야 말았다.

큰 아들의 생명존중 사상은 극단에 닿아 있어서 며칠 전 아들에게 '너 출가해서 승려가 될래?' 라고 비아냥거렸다. 녀석의 신념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언뜻 보면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지네는 해충이니 보는 즉시 죽여야한다고 말을 해도 지네의 터전에 와 있는 우리 인간이 잘못이라고 되받아친다. 그제 새끼손가락만한 새끼 지네가 나타났을 때도 아들의 최우선과제는 생포와 방생이었다. 하지만 녀석도 살짝 겁이 있기 때문에 순간 우물쭈물하다 놓치고 말았다. 벌레를 다룰 땐 과감해야한다고 한껏 잔소리를 한 뒤 찝찝함도 잠시, 지네의 존재를 잊고 말았다.

지난 밤 아들들은 곤히 잠들고 난 이어폰을 꽂은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틈틈이 기분나쁜 간지러움과 따끔함이 있어서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살펴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기장 안이니까 방심했던 것 같다. 영화를 끊고 싶지 않은 욕망에 한 시간을 넘게 눌려있었던 꺼림칙함은 착각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종료되었다. 이불을 털었더니 전 날 놓쳤던 새끼지네가 8자를 그리며 도망가는 게 보였다. 이불로 일격을 가한 뒤 휴지를 가져와 피의 복수를 마쳤다. 원래 휴지로 시체의 감촉을 느끼는 걸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분노에 휩싸였던지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에 모든 힘을 집중하여 우그러뜨렸다. 

한 시간을 넘게 모기장 안에서 지네와 부벼댔던 걸 생각하니 밤새 몸 여기저기가 간지럽고 따가웠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샌뒤 다음 날은 낮잠을 짧게 세 번씩 자며 버텼다. 그리고 기절하듯 밤새 잠을 자고나니 이제야 제 정신이 든다. 물린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아들에게 퉁퉁 부은 겨드랑이를 보여주며 "지네는 해충이야. 보는 즉시 죽여야해. 네가 놓치는 바람에 결국 엄마가 물렸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아니고 내가 물려서 다행이라고." 라고 말했다. 하지만 눈알을 덜그럭거리며 딴청피우는 장남의 표정을 보면서 다음 지네는 꼭 생포해서 네 몸에 올려놔주겠다 다짐하는 어미였다.

 

새끼지네도 우습게 볼 게 아냐.... 물린지 이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