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알/구례

꿈과 잠

소알 2022. 6. 9. 11:41

 

 

1년 전 아빠가 주무시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슨 꿈을 꾸고 계실까 궁금했다. 주무시다 미소를 지은 적은 없고, 오히려 잠에서 깨어 죽지 않았음을 알고 안도하며 웃으신 적은 있으니 아빠의 꿈은 대체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아빠 침대가 빠진 안방을 바라보며 새벽에 엄마가 혼자 눈 뜰 때 어떤 기분일까도 상상해보았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겠지만 때때로 매우 사무치기도 하겠지.

지난 겨울엔 거의 박완서 작가의 책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소설 속에 생생하게 6.25 전후의 서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서 그렇게 머릿속에 그려진 풍경에 젊은 외할머니나 어린 엄마 아빠를 넣어보며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삶을 상상했었다. 그렇게 몇몇 장면들은 꿈인지 책의 내용인지 아리아리한 상태로 남아 있다. 또 작가가 노년에 쓴 에세이를 들으며 노인의 삶에 침잠해보기도 했다. 

가끔 새벽에 눈이 퍼뜩 떠지면, 먼 훗날 새벽에 혼자 깬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구례에서 머물던 시절의 꿈을 꾸다가 퍼뜩 잠에서 깨보니 아들들은 다 장성하여 집을 떠났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난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이다. 그때의 난 어떤 기분일까. 행복할까 슬플까. 내가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줬더니 둘째가 울면서 자긴 장가를 안 가겠단다. 

역시 그런 생각은 너무 슬프니까 이젠 새벽에 눈이 떠지면 농사방석과 호미를 챙겨 텃밭으로 나간다. 덥지 않은데다 전 날 저녁에 준 물이 촉촉히 배여 있어서 잡초가 잘 뽑힌다. 잡초가 뿌리째 뽑힐 때의 쾌감도 있고, 잡초마다 다른 뿌리내음을 갖고 있다. 냄새가 각기 달라도 저마다 향기롭다. 새소리도 날마다 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듣기 좋다. 비둘기 소리만 빼고.

이곳의 밤은 스탠드 불빛 하나에도 날벌레가 마구 꼬여서 아주 정적인 활동조차 포기하게 된다. 대신 새벽은 감동적일 정도로 좋아서 새벽형 인간이 되려고 애써봤다가 수면패턴이 마구 꼬인 적이 있다. 그 얘길 했더니 옆집 엄마가, 하루는 9시부터 7시까지 자고 다음 날은 새벽 2시에 자서 아침 7시까지 자는 패턴을 반복해봤는데 꽤 안정적이고 피곤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덕에 잠의 총량을 장기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잠을 매일 일정하게 자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잠은 그냥 일찍 자고, 완전히 깨버리면 그냥 일어나서 할 일을 한다. 너무 적게 잤다 싶으면 점심을 먹은 뒤 잠깐 눈을 붙이니 하루를 보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아졌다. 수면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하다.